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폰 화면을 켜니 한달반 전쯤 낸 논문의 리젝 디시젼 메일이 와있었다.
시부럴.. 눈뜨자마자 거절이라니.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쌍욕 한 번 하고. 실눈을 뜨고 같이 일했던 선배들한테 이메일을 포워드했다. 우는 이모티콘과 함께..
리뷰어들의 코멘트를 대충 봤는데 틀린 소리는 역시 없다. 기분이 한결 더 안 좋아졌다.
Novelty가 부족하다는데. 이건 뭐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라는거냐.. 엄마 보고 싶다..
전에 K언니가 연구자가 하는 일은 아티스트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는데 글쎄 한가지 다른 게 있다면 우리는 논문을 낼 때 세상의 내가 모르는 몇 명의 다른 학자들로부터 크리틱을 무조건 받아야 된다는 거? 짧게는 몇개월, 길게는 몇 년동안 해와서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은 작품(연구)이더라도, 리뷰어 코멘트가 오면 꾸역꾸역 다시 붙잡고, 원하지 않았던 리뷰도 받아들여야 된다는 거? 이럴 땐 정말 미술작품 전시하듯이, 그냥 내가 만든 그대로의 논문을 전시만 하고 싶다. 그럴 거면 잡지를 쓰지 왜 논문을 쓰냐 하겠지만.
리젝이 왔을 때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소리 100번은 들은 것 같은데, 이게 실제로 받아보니 타격감이 없지 않다. 처음에는 그냥 '아 귀찮아, 언제 또 고쳐' 라는 생각이었지만, 그게 점점 '아 나는 아무래도 학계로 가기에는 XX가 부족해' 가 된다. XX 안에는 꼼꼼함, 통찰력, 필력, 끈기, 별게 다 들어간다. 내일 아침 8시에 당장 전공 시험이 있어서 공부를 해야하는데, 30분 공부하다가 다시 리뷰어 코멘트를 열어보고, 30분 공부하다가 또 사색에 빠지고. 자책하고. 제법 멘탈이 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의기소침해지는 걸 보니 나 은근 자존감 떨어졌었나보다. 시험공부고 뭐고 스바 던져 안해 안해
조금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관련 밈들은 찾아보곤 하는데 역시 기분전환에 최고다. 오늘 나의 픽은 아래 밈이다.
"당신의 논문은 이 저널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그건 .. 그건 그냥 니생각이고."
일단 오늘은 논문 수정 안할거니까 어쩌라고 마인드로 기어 바꾸고 시험 공부나 해야겠다. 이 밈 뽑아서 내 책상에 붙여놔야겠다.
아 마음 수련에는 시각적 자료가 필수라고 --
이 밈을 찾은 건 레딧인데, 그 레딧에 누가 이런 질문을 올렸다. 참고로 메디컬 연구 레딧 커뮤니티였다.
"보통 페이퍼 퍼블리시까지 몇번 리젝을 먹어? 나 지금 다섯번째 저널에 다시 내는 건데 이거 정상이야 아니면 그냥 내 연구가 쓰레기인거야?"
댓글: "음 평균은 잘 모르겠어. 근데 나도 4번째 저널에 내고 있어. 일단 넌 혼자가 아니야!"
사실 5번이면 우리 분야에서는 아마도 연구가 별로인 쪽에 가까울 것 같긴 한데 (저널 자체가 많지 않음), 일단 저 댓글 자체로 위로다. 익명의 네티즌으로부터 위로받아버렸다. 인터넷의 선기능이 이런 거였지.
한편으로는 이제 박사 시작한지 1년 9개월밖에 안됐는데 엄청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아서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콜라보 연구도 해봤지, 석사학사 학생들 지도도 해봤지, 논문도 내봤지, 학회도 가봤지, 워크샵도 가봤지...
이쯤 했으면 그냥 논문 리젝도 먹어봐야되는 타이밍인거다. 먹어봐야 맛을 알지?
이제 위로 잘 받았으니까 다시 정신차리고 시험공부해야겠다.
오늘 정신상태가 너무 vulnerable해서 글에 의식의 흐름 대박적 그잡채인데 미래에 보면 그냥 귀여울 거같다. 이게 다 과정이지.
나의 하찮은 블로그를 구독해주시는 우리 미국 박사 선배릠들도 나 귀엽게 봐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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