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제목을 먼저 정하고 글을 쓰는 편이다.
잠깐 이번 일기의 제목을 ‘무엇이 나를 병들게 하는가’로 쓸까 했다. 그렇게 쓰고서 글을 쓰려는데 병들었다고 생각하니 글이 안써졌다. 병든 게 아니라 잠깐 힘들어서 흑화했다고 보는 편이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병들어가는 게 아니라 산을 오르다 그냥 잠깐 숨이 턱 끝에 찬 상태인지도 모른다.
박사과정의 2-3년차가 힘든 것은, 산 정상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려는데 내가 지금 길을 오르고 있는 것인지, 내려가고 있는 것인지, 지름길로 가는지, 돌아가고 있는지 가끔은 정말로 모르겠어서 그렇다. 열심히 달리다가 문득 돌아보면, 다시 내려가기에도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더 괴롭다.
지난 일요일에는 조지아에서 난이도 탑3 안에 든다는 Blood Mountain에 다녀왔다. 한국말로 하면 피철철산인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등산을 하려니 입이 너무 마르고 볼은 금방 터질 것 같이 빨개졌다. 돌아보면 한국 산들에 비해 그렇게 빡센 편도 아니었는데 체력이 떨어지긴 했나보다. 이 산은 조지아에서 보스톤까지도 걸어갈 수 있는 Appalanchian trail의 시발점이어서 가끔 침낭이 들어있는 자기 몸만한 가방을 지고 다니는 캠퍼들을 볼 수 있었다. 좐나 머싯어 근데 좀 냄새날거같음
긴 산맥이라서 그런지 정상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마다 둘러보면 또 올라가는 것 같는 길이 있었다. 막상 그길로 가도 더 높이 올라가는 것 같지는 않은, 봉우리를 연결하는 산맥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정상이 한 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산은 정상이 선이었다. 진짜 정상이라고 느낄만큼 여러번 정상을 거치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거길 찍고 나서야 완등! 의 쾌감을 느꼈다. 역시 정상은 사람들이 많아야 맛있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돌탑을 발견했다. 나는 샤머니즘에 샤샤샤며들어있기 때문에 못지나치고 소원을 빌었다. 가족들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푹 쉬고 저녁도 먹었는데 기분이 참 이상하고 안좋았다. 왜 안좋은지는 잘 모르겠고 계속 기분이 꿀꿀하고 머리도 아파서 밍기적대다가 결국 일찍 잤다.
다음날 이상하게 가족 메신저에 톡이 많이 와있었다. 가족톡은 메시지가 많으면 일단 조금 불안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은 유학생에게는 매일 아침, 너무 공감이 되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심장이 내려앉는 내용이었다.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입원하셨는데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가 왔다고 했다. 내가 어제 돌탑에 대고 빈 것이 잘못 되었나? 했지만 올 것이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 지나서 엄마랑 영상통화를 했는데 엄청 울어서 눈이 퉁퉁부어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꽤나 해맑아보였다. 첫날은 좀 안좋았는데 다음날 갑자기 상태가 많이 호전되셨다고 했다. 아빠가 한번 뇌졸중이 왔었어서 엄마는 대충 그 회복기간과 징후를 아니까, 삼촌들보다는 씩씩할 수 있는 것 같다. 밝은 엄마를 보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우리 할머니 유병장수했으면 좋겠다.
할머니를 처음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간건 큰 외삼촌 덕이 크다. 큰 외삼촌과 큰 외숙모 둘다 전날 밤 할머니가 빼빼 마른채로 서있는 불길한 꿈을 꿨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전화했는데 안받아서 찾아가보니 집 밖에서 어버버버한채로 못들어가고 계셨다고. 왜 집 밖에 나와계셨는지도 아주 롱스토리지만 어쨌든 집 앞까지 돌아오셔서 발견된 것은 참 다행이다. 우리 가족은 가끔 일이 생기려고 하거나 누가 죽은 뒤에 이승을 떠날 때 가족들이 대신 꿈을 꾼다. 그래서 꿈자리가 안좋으면 꼭 가족들한테 연락해봐야한다. 나도 그래서 전날에 기분이 이상했나 싶었다.
내 속을 알 길이 없는 식물들은 무럭무럭 잘 자란다. 이주전쯤 토마토와 바질을 심었는데 새싹이 금방 나고 신나게 자라고 있다. 매일 아침 밤으로 얘네 쳐다보면서 멍 때리면 기분이 좀 낫다. 오늘 아침도 멍~
좋은 소식! 다음 달부터 국토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미국 도시계획 관련 소식을 담당해서 연재하게 됐다. 이런거 참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제안이 들어오니 내가 너무 바쁜 시기인가 싶기도 하고, 원고료 기준을 몰라서 너무 짠가 싶기도 하고, 사람들의 평가가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한테 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역시나 아무도 안 한다고.. ㅎㅎ 일주일을 머리 저편에 꾸겨놨다가 어제 그냥 지르자! 싶어서 한다고 했다. 연구원 월간지를 누가 읽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쩌면 미국 소식은 아무도 안궁금할 수도 있다. 그치만 누가 읽든말든 혼자 쓰다보면 스스로에겐 분명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어찌됐든 새로운 도전이 아닌가? 게다가 내가 하고 싶었던 도시관련 글쓰는 일! 다시 생각해봐도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설레는 일이 가뭄에 콩나듯하는 박사 2년차 생활에 그나마 활기찬 소식이다. More soon!
아직은 갈팡질팡 길 잃은 것 같은 산행이지만, 가끔씩 정상이 힐끗힐끗 보인다. 결국 그 길을 가야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좀 더 힘내서 정진해봐야겠다. 그 과정에서 내 자신을 잃지 않기를 .. !
'대학원 유학일기 > 유학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박사 유학일기] 3개월 간 블로그를 쉰 이유. 그 간의 근황 (0) | 2024.08.10 |
---|---|
[미국박사 유학일기] 2년차, 첫번째 논문 리젝 (2) | 2024.05.02 |
미국 박사 2년차 근황토크토쿠 ..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때 (1) | 2024.03.11 |
[미국박사 유학일기] 박사 2학년 2학기 4주차 - 카리나가 되자 (6) | 2024.02.02 |
[미국박사 유학일기] 박사 2학년 2학기 첫주. 널뛰는 나으 마음상태!! (4) | 2024.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