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야마구치 슈의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3-4년 전에 읽었다면 재미없고 뻔한 자기개발서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간혹 튀어나왔다.
(특히나 챕터 초입마다 인용구들이 적절하게 오만해진 내 머리를 때려주었다.)
그 중 두개만 따오자면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 공자, <논어>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더없이 많은 지식을 익혀도 그것이 조금의 힘도 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지식이 거의 없어도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 - 쇼펜하우어, <지성에 대하여>
요즘들어 느끼는 것은, 지식을 씹어먹든 삼켜먹든, 먹는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먹은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머리, 나름의 성실함으로 가방끈을 길게 쥐게 되었지만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세상에는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느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많이 배우지는 않았어도 필요에 의해 공부를 찾아서 하고, 그렇게 축적한 지식은 최대한으로 뽑아서 활용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널렸다. 전공을 하거나 커리어를 가진 것이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들보다도 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문제의식을 먼저 가지기도 한다.
반대로, 유학도 가고 일도 하고,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인프라 속에 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려운 글을 어찌저찌 읽어낼 수는 있지만, 그걸 바탕으로 어떠한 의미있는 비평이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많은 것을 배우지만 오히려 배운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면서 오만해진다.
유튜브나 서점에서 새로운 정보를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요즘, 나는 점점 더 지식을 축적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이를 어떻게 저장하고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태해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혹시 머리만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또, 지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사고력과 통찰력도 좋은 - 거기에다가 논문도 많이 쓰고 아이디어도 좋고 기술력도 좋은 - 그야말로 날고 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위축되기 쉬운 학계에서 나에게 특히 위로가 되는 챕터도 있었다. 82쪽에 시작되는 '목적 없는 공부야말로 나중에 빛이 된다' 라는 장인데, 가끔 공부를 하다가 이게 나중에 쓰이기는 쓰일까? 현타가 올 때도 있지만 - '계속 아웃풋을 내놓는 사람을 관찰하다보면 인생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인풋을 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는 부분에서 널널하고 조용하고 한가로워서 느끼는 조바심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슈는 아직 누구에게도 '책을 써주세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듣지 않는 시기, 시간이 남아나는 시기가 내가 마음껏 인풋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나이를 얼마 먹지도 않았지만 벌써 한참 어린 학생들을 보면 참 어리다, 뭐든지 배울 수 있는 나이다 싶다. 아마 몇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서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지금처럼 시간이 남아돌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있을까? 지금의 인풋들에 구태여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훗날 내가 아웃풋을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야마구치 슈는 또한 통찰력을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의 배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와 '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라는 두 물음에 대해 답을 내는 힘이라고 말한다. 내가 인생에서 끝없이 learning배움과 unlearning을 하면서 이루고자 해야할 것은 이 통찰력을 기르는 것과 창조성을 기르기 위함일 것이다.
이외에도 책에는 많은 양의 책 추천과 책을 읽은 후에 어떻게 하면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이 부분들은 직접 읽을 분들을 위해 남겨두겠다. 한 챕터가 두 쪽을 넘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가끔 들춰보는 책으로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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