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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BOOKS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 요약 없음 그냥 혼자 감탄하는 글 ㅇㅅㅇ

by 매실이 maesiri 2022. 7. 14.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우리 엄마는 유독 박완서 소설들을 좋아하셨다. 노안으로 작은 글씨 보기가 어려워진 뒤로는 책을 영 가까이 하지 않으시지만, 한창 책을 많이 읽으실 때 박완서 작가님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박완서의 책을 읽으면 여자로서의 박완서의 삶이, 엄마로서의 박완서의 삶이, 작가로서의 박완서의 삶이 느껴진다고 했다. 

 

아빠도 박완서 책들을 좋아하신다. 아빠는 내가 한국에 올때마다 책을 잔뜩 추천해주시는데, 저번 겨울과 이번 여름에 계속 읽으라고 권하신 것이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다. 박완서 책에 입문하려면 싱아를 먼저 읽어야한다면서 올 여름에는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부끄럽게도 (문학이나 역사 교과서에서 본 것 말고는) 박완서 작가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분인 줄도 모르고 책 표지만 보고서 최근에 나온 작품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박완서 작가님이 돌아가셨다고 뉴스가 났을 때 엄마 아빠가 박완서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부모님에 비해 책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나는 이제서야 '마침내'(헤어질결심꼭보삼) 박완서 라는 작가와 그의 소설들에 입문하게 됐다. 

 

표지가 너무 예쁘다.. 타계10주기 헌정 개정판이어서 이렇게 예쁘게 다시 나온 거였던..!!!

 

성장소설이라고 해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에 대한 작품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작가 본인의 삶을 유년기 때부터 오로지 기억에 의지해서 기록한  소설이었다.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무결할 수 없고, 왜곡된 것과 비어있는 곳들은 여러 주변 사람들의 왜곡된 기억으로 채워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서전이라고 했으면 조금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는 묘사들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책은 2002년, 그러니까 책이 나온지 10주년이 되었을 때 다시 쓴 서문(작가의 말)으로 시작하는데 딱 1쪽 정도의 글이다. 저 작은 책의 한쪽이니까 A4 용지 3분의2 정도 될 양이다. 근데 그걸 읽자마자 아빠한테 '와 진짜 글 잘 쓴다' 라고 말했다. 

글을 정말 잘쓰는 사람은 겨우 몇 문단으로 알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그렇게 한쪽을 읽고나니 300쪽 조금 넘는 싱아가 별로 길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2-3일 정도에 걸쳐 지루함없이 완독했다. 

 

띠지에 소설가 정이현이 "어떤 문장은 처음 듣는 순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고 썼다. 다 읽고 나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읽는 중에 자주 방금 읽은 문장을 곱씹으며 어떻게 이런 표현을 했지, 라고 감탄하게 된다. 억지스럽고 허세잡히지 않은. 동시에 되게 진실되면서도 기발한 문장들이다. 한 문장을 읽으면 다음 문장으로 저절로 눈이 가는 그런 글이다. 

 

글이 너무 편안해서였을까? 일제시대 이후 6.25 전쟁 때의 시절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전쟁통 속에서 민간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이질감없이 빨려들어갔다. 청소년기에 식민통치와 이념 전쟁을 겪은 작가가 어떻게 견디었고 살아졌는지 담담하고 자세하고 아주 솔직하게 묘사되어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전쟁이 아닌 남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배운 전쟁은 느낌이 다르다. 모든 쪽이 다 이해가 된다. 모두가 사람이어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구나, 이해해보게 된다.

 

싱아를 다 읽었다고 말하려면 후속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까지 읽어야 할 것이다. 싱아는 작가의 유년기에 대해 썼다면, 그산은 성년기에 대한 기억을 쓴 것이다. 그산은 작가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51년부터 53년까지 전쟁 속의 마음 아픈 일들이 그려진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아름다운 묘사였던 싱아와 크게 대비될 것 같아서 기대된다.

 

표지만 봐도 더 어둡고 성숙해보인다.

 

간만에 소설 읽는 시간이 짐같지 않고 즐거웠다. 싱아와 그산을 시작으로 박완서 소설들을 더 읽어보고 가야겠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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