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사 2년차에 들어 다행인 말들.
지난 주말에 몇년동안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냈던 K 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K님과는 청년기후단체 빅어쩌고에서 처음 알게된 이후로 꽤 자주 소식을 주고 받기도 하고 스터디도 여러번 했었는데 코로나+유학 때문에 실제로 뵌 적은 없었다. 요즘 매주 한번씩 줌으로 봐서 내적친밀감만 생겨서 약간.. 동물의 숲 캐릭터 같은 느낌이랄까? 마침 K님이 학회가 있어 아틀란타를 방문하셨고 감사하게도 나를 찾아주셨다. 만나고 나서 한 10초동안 서로 연예인을 본 것처럼 오.. 오.. 했다. 오낄낄
한식이 흔하지 않은 곳에서 오셨으니 같이 한인타운에서 순대국과 매운 돼지국밥과 순대 한접시를 먹었다. 깍두기와 김치가 양은 접시에 담겨나온 순간부터 K님은 꽤 감동받으신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꼭 일년 전 일리노이 시골 어딘가에 살다가 아틀란타로 처음 이사왔을때 내 모습과 닮았다. .. 사실 나는 아직 순대국을 한입먹으면 감동하긴 한다. (고향의 맛을 이렇게나 잘 살리다니! 분명 한국에서도 잘될 집이다.)
K님은 나보다 인생을 몇년 앞서 살고 있으니 나에게 선배님이나 마찬가지다. 몇년 더 살았을 뿐 아니라 박사과정 5년차라서 지금의 나에게 제일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분이다. 조언해주세욧! 하고 대화를 한건 아니었지만 얘기를 나누다보니 배우는 것이 많았다.
순대의 냄새도 빼고 대화도 할 겸 카페에서 생강차와 허니크림 와플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였지만 쓸데없이 거창한 세미나 5번 듣는 것보다 더 좋은 수업을 들은 기분이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soon-to-be 교수라고 생각하고 박사과정에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나는 5년 안에 잡마켓에 나가서 교수직을 구할 것이다. 아무생각없이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수업듣고 졸업 요건을 맞춰 달려갈수도 있겠지만, 교수가 되어서 어떤 연구실을 꾸릴 것인지 정체성을 찾고.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네트워킹하고 잘 맞는 학생을 뽑기까지 너어무 오래 걸린다. 박사과정일때부터 나는 곧 교수이고, 연구실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주어진 5년동안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내 커리어를 빠르게 발전시킬 뿐 아니라 직장을 찾을 때도 도움이 안될수가 없다.
연구를 할 때 이 분야하면 000이지! 하고 내 이름이 나올 수 있게끔, 내가 정한 연구 정체성 안에서 높은 퀄리티의 연구를 수행하자. 내가 일을 잘하면 네트워킹은 알아서 따라온다. 네트워킹이 안 중요한게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뭐가 없으면 네트워킹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말짱도루묵이다. 내 일의 정체성도 없는데 네트워킹에만 목맬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의 전환을 하고 나면 5년이 정말 짧다.
그리고 매일 2-3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비워놓는다. 아무리 바빠도 그 시간은 학업외 시간으로 쓴다. 특히 K님이 요일마다 이 시간을 다른 운동으로 채워넣은것이 신기했다. 매일 운동을 바꾸면서 잃어버린 요일감각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20대동안 이것저것 운동을 해보면서 나에게 맞는 운동을 두어개 찾았는데 앞으로 박사과정하면서 이 시간에 몇가지 더 찾아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참 쉽게질리는 성격이라..
마지막으로, 매일 의식적으로 행복하자. 이건 둘이 같이 얘기하면서 맞아~ 맞아~ 하며 함께 다짐하게된 부분이다. 미래에 이 학위가 나의 자아를 실현해줄거고, 밥 먹여줄거고, 안정적이게 해줄거야 라는 생각으로 살지 말고 현재를 살자. 작은 것에도 행복하자. 내가 행복해야 이 모든 것이 의미있는 것이다. 솔직히 너나 나나 언제 죽을지 모른다.
K님은 내 일의 정체성을 찾고, 확립하고, 그걸 계속 발전시키면서 글을 출판한다는 면에서 학계도 예술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창의력과 창작력, 독창성, 나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는 점에서 정말 제대로된 교수들은 아티스트와도 비슷한 면이 많다. K님이나 나나, 둘다 한동안 예술계에서 종사하기를 꿈꾸었고 앞으로도 언젠가 연관된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방식대로 아티스트와 비슷한 길을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이 길을 걷고 있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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