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살고 죽고: 치열하고도 즐거운 번역 라이프> 권남희
미국에서 공부를 다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영문서/원서 독해와 영한-한영 번역을 해야하는 일이 많아졌다.
첫 학기에는 내가 평생 영어공부를 해왔다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로 읽는 속도가 더뎌 매일 영어 소설을 최소 두 챕터씩 읽고 요약하면서 절대적인 읽는 양과 속도를 늘렸다. 두번째 학기에 점점 영어로 읽고 쓰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번역에도 관심이 생겼다.
간단한 문서번역 아르바이트라도 꾸준히 하면 궁핍한 타지 생활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이 생겨 한인학생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번역 프리랜서 구인광고에도 연락해 테스트도 보았다.
단 한문장의 연습도 하지 않고 패기롭게 본 20분짜리 번역 테스트는 보기 좋게 탈락. 휴. 번역아르바이트를 하리라고 주변에 공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게 마음 한 켠에 번역을 해보고픈 마음을 쑤셔넣고 귀국을 했다.
한국에 있을 땐 그리 많이 읽지도 않았건만 타지에 가니 한국어로 된 책들이 어찌나 보고프던지, 귀국 후 자가격리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 어느 때보다 책을 가까이 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주 한 서점에서 우연히 권남희 선생님의 <번역에 살고 죽고> 라는 책을 보았다.
마음 저 한구석에 구겨넣었던 번역에 대한 갈증과 궁금증이 뛰쳐나와 단번에 이 책을 집어 장바구니에 담아버렸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아무나 하면 통번역 전공이 왜 있겠냐고 스스로 반문했었다) 정말 나는 번역에 대해 몰라도 한참 몰랐다.
오늘 이 책을 읽으며 배운 중요한 몇가지를 나열해보자면,
1. 번역은 단순독해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라고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술술 읽히도록 매끄러운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고 글을 재창조하듯 써야한다. 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 단어에 대해서 내가 쓸 수 있는 많은 한국어 단어들을 알아야 한다.
2. 번역이라는 노동은 20년을 한 베테랑 번역가에게도 계속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노동이다. 쉽게 할 수 있는 투잡이라기엔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다.
3. 모든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 번역을 하기까지에도 많은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많이 읽어서 책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많이 읽어서 완전히 작품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국어 교과서를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처럼 꾸준히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많이 써보면서 내 문체를 많이 덜어내고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4. 그렇기에 번역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생 못해볼 일도 아니다. 우선 좀 더 내 공부에 집중해보자. 대신 그 과정에서 꾸준히 읽고 쓰자.
번역이라는 일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볼수도 있었지만 먼저 '역사의 산증인/경험자의 매뉴얼' 같은 것을 읽게되어 참 다행이다. 가지고 있던 갖가지 사소한 오해를 깨면서도 번역에 대한 로망만은 간직하도록 해준, 꼰대같지 않은, 찐 어른의 조언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편안한 문체로 쓰여지다보니 어느새 작가님과 따님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겨버렸다. 아 그리고 작가 소개에 '집순이지만 국카스텐 콘서트는 꼭 간다'는 말에 묘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국카스텐 좋아하시는 권남희 선생님이 번역한 여러 책들이 집 곳곳에 있는데 어얼른 집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앞으로는 책을 읽을 때 역자를 꼭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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