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
Make the earth Greta again!
이 슬로건만큼 그레타 툰베리의 영향력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구가 있을까.
창백한 얼굴과 울분을 토하는 듯한 표정. 옆으로 길게 땋은 연갈색 머리와 떨리는 목소리.
머리가 하얗게 샌 백인 남성들 앞에서 “How dare you?”를 외치는 어린 그레타 툰베리의 모습은 처음 보았을 당시 너무 신선해서 뇌리에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신선함 때문인지
분명 세계의 많은 젊은 세대가 기후변화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 흐름을 타고 기후변화를 위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은 학생도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기후행동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도록 용기를 준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레타 툰베리>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 다큐멘터리는 그레타가 그 자리에서 연설을 하기까지- 1인 등교거부 시위에서부터 그 영향력이 확산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려 그레타의 남다른 용기와 끈기를 잘 투영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그레타툰베리를 단지 국제회의에서 최초로 기후에 대해 경고를 한 아이로서, 그 한 장면으로만 기억했다면 다큐멘터리를 본 후에는 그레타의 지지 않는 의지와 주변의 작은 응원만으로도 굳건히 나아가는 끈기로 기억하게 되었다.
지구를 그레타처럼! 이라는 문구에서 이전에는 지구를 이전과 같이 좋은 모습으로 돌려 놓자는 말에 환경운동가의 아이돌을 끼워넣은 것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그레타와 같이 지구를 기후변화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하나뿐인 ‘집’으로 보자는 의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다큐를 본 동동님은 연설장 뒤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나도 매우 공감하는 터!
'엄마가 써주는 연설을 눈물 연기하며 읽는다'는 악플을 단 사람들은 아마 다큐를 보고 조금 머쓱할 것이다. 보지도 않겠지만.
연설장에 오르기까지 그레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연설문을 작성하는지,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역할은 무엇인지 (사실상 그레타의 아버지가 하는 제안은 모두 까이는 것으로 보임..ㅋㅋㅋ) 연설장에서 사람들이 그레타를 대하는 태도, 연설을 듣는 태도는 어떤지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마치 케이팝스타의 화려한 무대 이면을 보는 것처럼 치열하고 한편으로 안쓰러웠다. 나는 저 나이 때 친구들이랑 자판기 밑에 누가 떨어뜨린 동전이 있는지 보겠다고 땅바닥에 얼굴을 문대고 교복을 더럽히며 놀기나 했는데..
하지만 솔직한 평을 더하자면, 다큐멘터리의 연출이 그레타가 가진 아스퍼거 증후군에 과한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 불편하고, 끝내는 조금 지루하기까지 했다. 마치 그녀의 모든 행동을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정의해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렇게 매도해버리는 기득권 남성들을 비꼬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자폐 스펙트럼은 그 말 자체에서 증상의 범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디에서부터 정상적인 아이이고, 어디에서부터 비정상적인 아이인지는 누구도 재단할 수 없다. 물론 한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 아스퍼거 증후군의 증상인 것은 맞지만, 그레타가 정신질환이 없었다면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을지, 등교거부시위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레타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아’서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시의적절하게 기후위기에 빠져서 ‘운좋게’ 엄청난 영향력을 펼친 것처럼 받아들여질까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과학적인 근거- 어린 그레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다뤘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기후위기에 별 관심은 없지만 우연히 본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특히 많이 보여줄테니) 오히려 통계는 부실하고 정신질환을 가진 소녀의 집착으로 받아들이고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비관적인 나니까 이 모든 걱정이 기우일 수 있다. 기우여야 하고.
인터뷰어가 그레타에게 '너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 맞냐', 라고 물었을 때 그레타가 초연한 표정으로 '‘앓는’ 것은 아니고 가지고는 있지요'. 라고 답하는 부분에서 그레타가 얼마나 자신의 질환에 대한 질문이나 조롱을 받아왔을지 감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레타가 반복되는 자신의 정신질환 언급에 위축되고 질환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의해버리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환경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의 인격에게서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섬세해서, 여성스러워서. 사람들이 찾은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쩐지 비꼬려는 의도가 다분한 경우도 보인다. <그레타 툰베리> 다큐멘터리에서는 기후위기를 이겨보자는 학생의 외침보다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말로 내뱉는 그런 편견과 속단을 관찰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지 않았는가, 반대로 나에게도 누가 이런 속단을 하고 있지 않을까 돌아보았다.
나는 기후위기를 처음 공부하고 주변에 고기를 덜 먹겠다는 말을 했을 때 '도덕적 우위에 있는 것처럼 굴지 말라', '비건들은 엘리트 의식을 가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내가 당신에게 무슨 엘리트의식을 보였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냥 대화를 끊었다. 어쩌면 내가 진짜로 그래보였는지도, 아니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한참은 내 의견을 표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간혹 사람들이 환경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완전무결함'을 바라는 것 같다. 열변을 토하면 감정적인 사람. 불편함을 보이면 예민한 사람. 친절하게 통계적으로 완벽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어긋난 사람, 선동된 사람으로 비쳐지나 보다.
정말로 내가 주장하려는 바가 있다면,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하겠다. 모든 질문에 받아칠 수 있는 매뉴얼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스스로 구축해야하는 부분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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