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주 마않은 여행기가 될 예정 ^_____^
1. 제주도를 열번쯤 갔지만 부모님이랑 셋이서 가기는 처음이다. 비싸고 바쁘신 오라버니는 여자친구랑 제주도에 다녀온지 얼마 안됐을 뿐더러 바쁠 예정이라며 맛집 추천만 해주고 함께하진 않았다. 참 같이 놀러가기 힘들다.. 맛집 추천해 준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부모님과 셋이 여행하는 건 오빠가 군대에 있었을 때를 제외하고 처음인 것 같다. 사랑을 독차지(?)하는 건 좋지만, 오빠도 좋으니까 다음엔 넷이서 가고 싶다. 요즘 오빠는 자기 나이에 가족 간섭 받는 게 싫다고 한다. 오춘기냐고.. 아주 독립심에 불타오르는 중. 그만 불타줄래 제발
2. 미국 돌아가기 전에 제주도 한번 가야지~가야지 하다가 갈 날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아버린 어느날 엄빠랑 술먹고 충동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렸다. H가 준 필름카메라도 챙기고, 혹시 모르니까 수영복도 챙기고. 짐 쌀 때의 설렘.. 공부하러 멀리 떠날 때와의 감정과는 매우매우 다름 ㅠㅠ
3. 첫날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늦게까지 하는 집이 거의 없어서 오자마자 배달앱을 켰다. 배달의 민족답다. 그래도 비행기타고 제주도까지 왔으니 제주도 음식을 먹어야한다는 집념으로 아강발과 고기국수 파는 집을 골랐다. 예상 도착시간이 가장 빠른 곳으로.. 왜냐? 배고파서 현기증나니까-
배달은 시킨지 한 20분만에 왔는데 양과 맛이 모두 대만족스러웠다. 배고픈 하이에나가 돼서 그런걸까? 왜 이런집이 유명하지 않은거야? 저 고기국수가 고작 8천원인데 엽떡 사이즈 통 가득에 국물도 진국이었다구,, 역시 배부르고 등따시면 어디든 즐거운 법. 밥을 먹고 나니 시야가 넓어지면서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배고프면 시야가 500원짜리 동전만치 작아진단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늦게 시작한 첫날은 폭식과 렌트카 예약으로 마무리했다. 요즘 제주도 렌트카 하루에 10-15만원은 하던데 운좋게 하나 남은 LPG 승용차를 하루 5만원 꼴에 득템했다. 개이덕-
4. 아침에 브런치는 가볍게 전복뚝배기, 고등어구이, 전복해물탕으로 시작했다. '미스7'로 치면 안나오고 '미스칠'로 검색해야지만 나오는 이상한 이 식당은 진짜 요물이다. 마지막날 또 오려다가 실패했는데 같은 여행에 다시 들르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와 서울에서 먹는 제주도 음식과는 다르구나 띠용 왁 왐마 진짜 맛있다 우왁 이런말나옴;
5. 엄마가 노형슈퍼마켙에 가자고 해서 무슨 제주도까지 와서 슈퍼를 가자고 하나 했다. 근데 이름만 슈퍼마켙인 미디어전시관이었다. 역시 아무 기대없이 가서 좋았던 걸까.. 미디어전시에 그렇게 관심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갔다가 전공 바꿀 뻔했다. 미디어 아트의 세계가 이런거였다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전시와 아무 생각없이 보는 전시가 이렇게나 다르다. 어쩌면 전시는 아무런 생각도 기대도 없이 가야 더 온전히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6. 함덕해수욕장 - 가는 길에 만난 오피스 제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곧이어 함덕해수욕장에 가자 사람들이 좀비떼마냥 바글바글 징그럽게 많았다.
이 날 사람이 없는 함덕해수욕장 구석은 말로 표현 못할만큼 아름다웠는데, 그 장면은 필름 카메라로 맡겼다. 내일은 무조건 현상 맡긴다 내가..
아무튼 사진이 나오면 또 기록할거임
7. 스누피 가든은 유튜브에서 많이 봤다. 스누피랑 인증 사진 찍는 고런고런 포토스팟인 줄 알았는데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대충 보고 넘어갈 만한 곳이 아니었다. 비자나무 숲, 감귤나무 숲, 전시관, 호수, 등등 소형 전기버스가 돌아다니는 규모의 대형 정원이었다. 제주도의 흙색이 그렇게 아름다운 걸 스누피 가든에서 알았다. 똥색 흙이 주는 갬성이란.
스누피 전시에서 가든으로 넘어가는 구간. 아빠가 하늘을 보는 모습이 멋있게 나왔다.
놀랍게도 20분쯤 뒤 폭우가 내릴 예정인 하늘이다. 똥색 흙이 매우 아름다움
숲이 하도 많아서 이게 무슨 숲이었는지 기억은 안난다. 대충 심은 것 같으면서도 가까이서 보면 조경에 장난 아니게 많이 신경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스누피 가든.
중간에 카페에 들렀는데 커피를 시키자마자 폭우가 내렸다. 자리를 잡고나니 우르르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다. 타이밍 굿.
8. 여행을 가면 습관처럼 책방을 들른다. 이 날은 음악가 요조님이 운영하시는 책방무사에 들렀다. 요조님의 이름은 환경단체와 일할 때,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책을 우연히 추천받았을 때, 아무튼 우연하게 많이 들었던 이름이었지만 그 분의 음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는 길에 요조의 음악을 들었다. 제주도에 살던 이상순님과 함께 만든 음악이었다.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에세이집에서도 읽었던 것 같다. 본업은 가수인데, 음악을 제대로 한지 오래된 것 같다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지 않아도 누군가 찾아들으면 그 사람은 음악가로 남게되는거니까, 이 날 요조님은 나에게 아무튼간에 가수였다. (그런데 책방을 곁들인..)
9. 플레이스캠프 제주에서 두 밤을 자게 되었다. 플레이스캠프는 실은 나에게 아주 안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예전에 이 곳에서 전시를 하려고 한다 해서 기획의뢰를 받아 출장을 온 적이 있는데 같이 온 사람과 밤새 원하지 않는 싸움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 떄 생각만하면 아직도 뒷골이 시큰하지만, 어쨌든 지나간 곳이라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무척 인더스트리얼한 인테리어로 요즘 Germany들 서타일이다. 대충 땀에 절은 셔츠를 걸어놔도 뭔가 느낌이 있어보인다. 그래서 한 컷 남겼다. 이 곳에 내 몸이 또 왔다갔다 요런 느낌으로.
걱정했지만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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