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5 - [느리게 쓰는 여행일기/국내여행] - 제주도 한라산 성판악 코스 등반 일지 (feat. 교래자연휴양림)
방금 여름에 쓴 한라산 성판악코스 등반일기를 읽고왔는데 참 오래된 일 같다.
한라산은 어찌된 게 방금 올라갔다왔어도 일단 내려오고 나면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오로지 후유증으로 몸만 종이인형처럼 펄럭일 뿐..
겨울의 한라산은 더 그렇다. 아마도 설경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인 것 같다.
한라산 매직인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인가
한라산만 등반하려고 하면 잠이 안온다. 이번에는 그다지 설레지도 두렵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커피도 많이 안마셨는데
전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그래도 밤을 꼴딱 새고 간 성판악 코스 때보다는 낫다.
영실은 왕복 다섯시간 코스라 도시락을 쌀 필요도 없었다. 세시간 수면시간 확보!
걱정했던 것보다는 날이 따뜻해서 가는 길에 빙판길을 지나칠 일은 거의 없었다. 눈에 한번 바퀴가 헛돌기는 했지만.
대신 별안간에 좌측 뒷바퀴에 저압경고등이 떠서 중간에 타이어를 확인하고 가야했다. 일단 시간이 없어서 하산한 뒤 처리하기로 하고 서둘러 천백고지 도로를 달렸다. 서서히 바람이 빠지는 바퀴로 멀미날 것 같은 중산간 길을 돌다보니 딱 한시간 걸려 영실코스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왜 숙소를 항상 멀리 잡는가?)
초반에는 아이젠이 필요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들어가는 첫 걸음부터 눈길이다. 푹푹 꺼지는 눈길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아이젠이 많이 도움이 됐다.
나중으로 갈수록 눈이 깊어서 아이젠에 스패츠(발목-종아리 토시)까지 한 보람이 있었다.
날은 따뜻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눈바람이 거세지고 길이 험해졌다.
모자, 장갑, 방수복장 없이 아이젠만 차고 온 모아이가 조금은 불쌍했다. ㅋㅋ
눈 쌓인 병풍바위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안개가 끼었다 걷혔다해서 신비로울 때도 있었고 선명할 때도 있었다. 추운 것 빼고는 경사진 코스가 짧아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 아닌가.. 다시 시작된 한라산 미화..
영실코스의 장점은 가파른 경사로 초반에 조금 힘들다가도 한참동안 평평해서 자연 감상을 여유롭게 하면서 갈 수 있다는 것.
중간 중간 구름이 걷힐 때마다 백록담 뒷편이 보여서 심본 것 같이 좋았다. 눈보기 힘든 곳에 있다와서 더 그런가? 깨끗한 눈이 이렇게나 많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괜히 반가웠다. 주변이 온통 하얗고 뿌연데 아래 사진처럼 가끔 구름이 걷히면 화창해지면 갈증났을 때 시원한 물 들이킨 것 처럼 눈이 시원했다.
시간이 없어서 분기점까지는 못가고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갔다가 내려왔는데 도시락도 없고 조금 지쳐서 별로 아쉽지 않았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가벼운 법이다.
짧은 코스라 사람들이 밥 안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밥상을 싸오셔서 당황했다. 김밥, 라면은 기본이고 족발까지 봤다는..
끝까지 가보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우리도 점심 좀 싸올걸 하는 아쉬움이 더 컸다.
대피소에서 모아이가 웃긴 걸 발견했는데 대학원생으로서 너무 웃펐다.
절대 물건 올리지 말아달라는 연구시설에 라면을 마구 올려두신 분들. ㅋㅋㅋㅋㅋㅋ
포항공대 환경공학부 대학원생들이 부디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잘 대비해두었기를 동질감에 바래본다..
것보다도 이거 설치하려면 여길 왔어야 했다고??????
내려올 때 더 아름다운 설경.
내려오는 길에 토끼귀 모자를 쓰고 가는 무리를 봤다.
나이는 우리보다 많아보였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친구들이랑 저러고 같이 또 와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열한시간 등반했던 여름과 비교하면 훨씬 수월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등산이었다.
설산 등반은 모두 처음이라 아이젠이나 스패츠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처음을 같이해서 긴장없이 즐기다가 왔다.
다행히 아무도 안 다치고 무사히 하산해서 뿌-듯.
여름 등반 이후에 9rin언니는 무릎이 안 좋아져 아직까지도 고생 중이라던데 이번에는 그런 사람이 없길.. 안전과 건강 제일이다.
이들은 다음에 가을 한라산에 도전한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그때 한국에 없을 예정. (나는 아무래도 당분간 한라산과 내외해야겠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가 너무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있어서 자랑스럽다.이번 코스에도 외국인 커플이 몇번 보였는데 괜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오래도록 보존되어서 나도 외국인 친구들이나 자식들에게 두고두고 여러번 보여주고 싶다. 이 글을 읽은 구독자 분들도 한번쯤 가보시길 강 chooooo추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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