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의 2차성징

처음 저렇게 방울같은 것이 고개를 숙일 때 사실 청양고추에서 벌써 열매가 나나 했었는데, 며칠 지나고보니 꽃망울이다. 끝에서 흰색 꽃잎 뒷면이 비치는 걸 보니 확실히 저건 꽃이다. 하긴 나는 나몰래 언제 지들끼리 꽃피고 수분하고 그랬나 기특해했는데 내가 매일 보는데 그럴 리 없지..

이 청양고추 두 개를 나눠준 친구 말로는 둘다 꽃이 피면 면봉으로 한 놈 꽃술을 문대고 다른 놈 꽃술에 비벼줘야한다고 했다. 다른 놈은 꽃망울이 내려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자세히 보니 방아다리 조금 지나서 아주 작게 꽃이 피려고 하고 있었다.

 

친구가 예전에 친히 꽃 핀 후 해야할 일을 그림을 보내 설명해줬었다. 방아다리에 난 꽃을 떼고 그 아래 잎들을 잘라주라고 했다.

 

꽃은 아직 망울이 너무 작아서 그대로 두었지만 잎은 참지 못하고 바로 떼줬다. 며칠만에 잎을 자른 자리마다 벌써 새싹들이 나오는 모습이다. 청양고추에게 꽃은 2차성징과 같은 거라니 그 비유가 신비롭다. 엄청난 성장을 하는 시기에 사람들 본인은 모른다던데 아마 이 청양고추도 자기가 제자리인줄 알까? 계속 폭발적으로 성장하라고 떼준 것인데.성장할 때의 가지치기와 지고 있을 때의 가지가 떨어지는 때, 그것을 식물들은 다르게 받아들일까?

 

나 역시 성장 중일 때 제자리 걸음 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혹시 지금도 그럴까? 식물은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나를 이렇게 가만히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식물이 매력적이다.

아래 친구는 분갈이가 필요하다. 화분 아래로 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분갈이를 해준다. 이 친구는 잎이 너무 많아서 이미 물 줄 자리도 얼마 없는데 이 좁은 곳에서 엄청 잘 자란다. 좁아터진 서울에서 꾸역꾸역 잘크는 우리나라 시민들 같다. 기특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난 주말 흙과 화분을 사왔으니 이번주는 꼭 자리를 바꿔주어야겠다.

다른 친구들도 잘 자라고 있다.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하지만 다행히 해가 잘 비춰서 다들 잘 자라는 것 같다. 아직은 재활병원같은 모습이지만 얼른 다들 회복해서 식물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