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않는 청양고추 꽃 (feat. 돈나무 분갈이)

 

저세상 초점 죄송..

화분밖으로 뿌리가 삐져나오는게 보이는 돈나무. 영어로는 ZZ plant라고 부르는 듯 하다. 

이름도 ZZ인 지지 플랜트는 정말 쉽게 지지 않는다 (핫핫)

물을 안줘도 물을 많이 줘도 그대로인 우리 지지는 해가 많이드는 집으로 이사온 후 예전보다 더 폭풍성장 중이다. 

이미 몇개월전부터 화분이 좁아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심심한 어느날 화분 밑을 확인해보니 역시 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건 분명 분갈이가 시급하다는 징조이다. 

 

집에 적당한 사이즈의 화분이 없고 마침 흙도 똑 떨어져서 홈디포에 가서 후딱 사왔다. 이때 바질과 방울토마토 씨앗도 사왔는데 아직까지 안심었네.. 충동구매였다 사실 (핫핫핫).

무튼 분갈이를 해주면서 새로운 집에 정착 잘 하라고 흙도 잘 눌러주고 3일정도 해맞지 말라고 화장실 옆에 두었다. 

이 자리도 제법 잘 어울리는 듯 하다. 

 

분갈이를 한건지 티도 안날만큼 지지는 몸살기가 없었다. 보통 화분을 바꿔주면 시들시들해질법도 한데, 바로 적응을 해주었다. 역시 쉽게 지지 않아..

 

나는 지지같은 사람들이 좋다. 어딜 내놔도 그저 자기 페이스를 지키고 자라는 사람들. 쉽게 주변을 걱정하거나 피곤하게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들만의 매력이 또 있지만 ㅎ. 너무 굳건한 나머지 이게 살아 있는 것을 까먹은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수 있다. 그러다가 또 어느날 오랜만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커있어서 그동안 변화하는 걸 몰라본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지지 플랜트는 그래서 누구나 키우기 좋은 식물이다. 식물을 안키워본 사람부터 아주 노련하게 식물을 다루는 사람들까지 쉽게 죽일 수 없다. 그래서 그만큼 내가 정말 쓸모있는 주인인지 확인하기 어렵기도 하다. 예민한 야자계열 친구들은 내가 눈돌리면 금새 시들고 관심을 조금만 주면 금세 또 피어서 얘는 나없으면 죽겠구나 싶은데 지지같은 애들은 내가 오히려 의지하게 된다. 내가 주인인 것은 어쩌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아마도 지지 플랜트가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인풋을 주건 말건 리액션은 작아서 어떨 땐 서운하지만 언제나 굳건해보이기 때문에 때때로 의지할 수 있다고.

 

그건그렇고 청양고추 꽃이 제대로 피었다.

사진에는 한개밖에 안 보이지만 지금은 4송이나 피었다. 

 

 

문제는 그 4송이가 모두 한 놈에게서 피었다는 것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다시피 청양고추는 다른 놈에게서 핀 꽃과 서로 문대줘야 한댄다. 지금 그 다른놈은 2주째 꽃봉우리만 피고 필 생각을 안하니 마음이 조급하다. 

 

더 웃긴 것은 그 놈을 기다려주는건지 꽃핀놈은 한송이도 질 생각이 없다. 필 때부터 땅을 보고 피는 것이 이미 시들시들한건가 했는데, 놀랍게도 근 2주동안 그대로 피어있는 것 같다. 혹시 이 놈이 모든 영양분을 가져가서 꽃을 4개나 피워버리는 바람에 다른 놈의 생장이 멈춰버린 걸까? 오늘 집에가면 다른 놈의 방앗잎을 솎아내서 얼른 꽃이 피도록 해줘야겠다. 

 

이 둘을 보고 있으면 한쪽만 마음이 급한 커플을 보는 것 같다. 한 명은 짝짓기하고 싶어서 꽃을 피워대고 난리인데, 다른 한 쪽은 해줄듯 말듯 하면서 버티고 있으니.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지만 너무 목마른 나머지 물을 다 끌어와서 상대가 꽃피지 못하는 격이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식물의 세상도 인간세상 못지 않게 복잡하고 유치하다. 평온한 것 같으면서도 즈그들끼리 피고 지고 시들고 하는 것이 요즘 나랑 별로 다를 게 없다. 멀리서보면 나도 결국 식물만큼이나 미생인지도 모른다. 식물일지는 무슨.. 매번 "결국 인생이 덧없다"는 식으로 끝을 내버리는 것 같다. 지나고나서 식물일지를 읽다보면 나는 왜이렇게 힘빠지는 글을 썼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에는 좀  더 희망찬 일지를 써보려고 노력은 하겠다만 그게 안되면 내 성향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ㅎ.ㅎ

  

어쨌든 이번 주는 좀 더 지지플랜트같이 굳건할 한 주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