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서울이다.
블로그를 쉬는동안 공부도 운동도 여행도 안하고 오로지 집에서 쉬고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넷플릭스 런~
그러다가 문득.
곧 험하디 험한 애틀란타 대도시의 도로에 내던져질 거라는 걸 자각하고.. 운전연수를 등록했다.
연수 강사님은 오랜만에 만나는 새로운 사람이었다.
Day 1
첫 연수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수서역을 지나 위례를 찍고 복잡한 코엑스 쪽을 돌고 돌아오는 두시간짜리 코스였다.
강사님이 손이 좀 거치셔서 갑자기 핸들을 대신 막 돌리기도 하고 빵빵이를 누르기도 하고 브레이크를 퍽퍽 치시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와 자동차를 지킬 수 있는 건 강사님 뿐이라 순종하기로 했다.
엄마 또래 아주머니였는데 딸이 미국에 있다고 했다. 동질감이 느껴져서 마음을 좀 열었다.
Day 2
두번째 수업 때는 내가 곧 춘천까지 차를 몰아볼 일이 있어 시내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춘천까지 같이 몰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안위를 위해서 초보운전 문구를 붙였다.
전날 기상예보를 보니, 그 날은 장마(라고 쓰고 폭우라고 읽는)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새벽까지 불안해서 잠을 많이 못 잤다.
당일 아침에 눈을 떠서는 고속도로 운전 팁 영상을 유튜브로 보다가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혼자 절에 갔다.
쥐띠라서 쥐모양 촛불을 사서 기도도 올리고, 공양미도 올리고, 사고예방 옥팔찌와 차걸이도 샀다. 덕 쌓으려고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위한 기부도 했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라서 이런 일련의 의식을 치르고 나면 좀 덜 불안하다.
차를 타자마자 강사님이 옥팔찌 누가 만든거냐고 물어봤다. 아침에 절에 가서 사왔다고 했더니 마음이 참 예쁘다고 했다. 이왕 비는 거 하나님한테도 빌라고 했다. 크리스천인가보다 했다.
기도빨이 좀 먹혔나? 11시부터 온다던 비는 1시 반이 되어서야 오기 시작했다. 강사님이 내 기도빨이 센거 같다고 했다.
남춘천에 있는 온더가든이라는 닭갈비 맛집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계산할 때 강사님이 커피 뽑는다고 슥 사라져서 결국 내가 결제했다.
나는 유교걸이라서 어른한테 따지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밥은 내가 산 걸로 하고 입에는 맞으셨냐 공손하게 물어봤다. 다행히 커피는 사주셨다.
폭우를 뚫으면서 집에 가는데 강사님이 기분이 좋아지셔서 다음 수업 때는 자기가 공짜 커피를 주는 전시도 데려가고 코다리 찜도 사주신다고 했다. 다행히 수강생한테 닭갈비 뜯어먹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Day 3
저번 여행을 계기로 강사님이랑 좀 가까워진 것 같다. 원래 네번정도 하지만 춘천 다녀오느라 시간을 많이 썼으니 이번이 마지막 수업이었다. 전시도 보고 커피도 먹고 코다리찜도 먹을 생각하면서 좀 설렜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파리바게뜨 봉투를 보여주길래 좀 쎄했다.
역시나. 차에 타더니 식당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점심에는 빵을 먹자고 하셨다.
코다리찜 사준다며 !!!!!!!!!!!!!!!!!!!!!!!!!!!!
솔직히 코다리찜을 파리바게뜨로 때우는 건 선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른은 공경해야되니까 그냥 참기로 했다.
표정관리가 안됐는데 자동차는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앉는 구조라서 다행이었다.
전시가 숭실대 쪽이라고 했다. 그래서 숭실대학교를 찍으라고 했다. 돌아보면 왜 전시관이 아니라 대학교를 치라고 하는지 의심했어야 하는데- 나는 원래 쫄면 대가리가 안 돌아간다.
다 와갈때쯤 전시가 어떤 교회에서 하는 거라고 했다. 흠칫했지만 초행길이 무서워서 대가리가 또 돌아가지 못했다. 꼭대기 층에서 교회랑 별개로 진행되는거고 사람이 많아서 3층에서 영상을 보면서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에서 주는 공짜 커피는 도대체 무엇일지 기대됐다.
생각보다 교회가 엄청 컸다. 들어가는데 교회 사람들이 강사님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이렇게 생겼다.
크리스천 같더니 이 교회 다니나보구먼 이라고 생각했다. 3층을 올라가면서부터 강사님이 말수가 급격히 늘었다. 뭔가 흥분한 것 같았다.
대기실이라더니 알고보니 예배실인 곳에서 교회홍보영상을 틀어줬다. 넓은 예배실에 둘만 있으니까 갑자기 좀 무서웠는데 설령 이 사람이 사이비라고 하더라도 날 납치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5분이 넘도록 영상을 보면서 한시도 쉬지 않고 교회 자랑을 했다. 유월절 어쩌고 새언약 저쩌고 쏼라쏼라
내가 절에 다녀온 것도 신실한 마음이 생겨서 그런거라고 나를 예뻐하셨다.
영상을 보면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데 영상을 다 보고 나니까 약간 웃음도 났다. 한때 <구해줘> 팬이었는데 그냥 유니버셜스튜디오 같은데서 구해줘 체험하는 것 같고 재밌었다. 그럼 나는 서예지 할까 전여빈 할까~ 응 둘다 싫어~
전시는 '아버지의 진심' 이라는 제목의 고생하신 아버지들에 대한 전시였는데 탄광촌에 다니던 아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빠들의 희생과 부성애가 담긴 편지같은 것들이 전시되었다. 한국어는 좀 빨리 읽는 편이라 쉭쉭 지나갔는데 강사님이 자꾸만 팔을 붙잡고 이거 보고 간거냐구 너무 눈물나지 않냐고 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주셨다. 넵! 저도 읽었어요! 빨리 집에 보내주세요!
이렇게 생긴 사람들이 눈물을 닦으면서 전시를 보고 있었다. 이쯤되니 뭔가 께름칙해서 별로 감정이입이 안됐다.
전시는 내 예상대로 하나님 아버지 얘기로 이어졌다. 홀리몰리 생각보다 공들여서 전시를 만든 것 같았다. 포교용인 것 같은데 나는 이런 큐레이션에 넘어가지 않아! 차라리 코다리찜으로 꼬시라고!!
운전연수 강사님의 긴 설교를 들으면서 전시를 다 보고서는 앞에 커피 자판기에서 라떼를 마셨다. 공짜라더니 300원이었다. 강사님이 와줘서 고맙다고 사주셨다. 사실은 이 전시를 보려면 꼭 초대자를 1명 데려와야했다고 했다. 포교 못하면 전시도 못보는 신도 신세인 강사님이 좀 안쓰러웠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집에 가는 길에 신이 났다. 비 좀 그만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강사님이 자기는 텃밭이 있어서 비 오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기분이 좀 좋아져서 나도 식물 키우는 거 좋아한다고 했더니 우리 둘이 통한다면서 텃밭에서 오늘 수확한 고추랑 감자랑 쑥갓을 준다고 했다. 요즘 마트 물가도 비싼데 가계에 보탬이 좀 되겠는걸 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러다가 다음주에 서비스로 1시간 반을 더 해준다면서 자기가 사줄테니 오늘 못먹은 맛있는 거 먹고, 가까운 동네에 있는 자기 텃밭에도 가보자고 했다. 전도 1시간으로 공짜 수업과 농작물을 받는 건 꽤 괜찮은 회수인 것 같다.
아직 다음주가 안왔다.
어제 기독교인 친구 둘을 만나서 교회 얘기를 해줬더니 이름난 사이비라고 했다. 나무위키에서도 분류가 사이비종교라고 되어있었다. 좀 더 파보니 코로나 집단 감염으로 유명한 교회이기도 했다.
텃밭에서 힐링하자는 거 봐서는 텃밭도 교회 텃밭일 수 있겠다. 근데 그냥 대충 맞춰주면서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텃밭 위치가 다행히 도시 한복판이고 운전도 내가 하니까 납치 당할 것 같지는 않다.
운전연수 겸, 농작물 수확 겸, 처세술을 단련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텃밭 다녀오고서 또 글 써야겠다. 다음엔 사진 더 많이 찍어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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