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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유학일기/유학 일기

드디어 미국 대학원 박사과정 합격

by 매실이 maesiri 2022. 2. 17.

드디어 미국 대학원 박사과정 합격!!!!!!!!

 

2021년 11월.

돌아보면 그다지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박사과정에 지원하면서 내 과거 행적들을 정리해보니 좀 열심히 산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더라. 학교 성적표며 그간 진행했던 프로젝트며 연구며.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해서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니 조금 조바심을 덜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멘탈 관리.

 

그럼에도 지금 내가 있는 곳보다 높은 어딘가에 나를 끼워주십사 지원서를 내는 것은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박사과정 지원서를 쓰면 자주 친구들에게 존재론적 위기Existential Crisis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어쨌건 제가 세상에서 제일 멋들어진 인생을 살았어요.jpg' 풍의 지원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붙들고 있을때면 하루 끝에 꼭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거 해서 뭐하게',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따위의 생각이 찾아와서 어김없이 내 존재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됐다. 한번은 지원서를 쓰다가 박사과정 언니들이랑 별을 보러 갔는데 Milky Way가 보이는 호숫가에 앉아서 내가 저 무한한 공간 속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완전히 잃어버리기도 했다. 박사과정이고 뭐고, 놀기에도 바쁜 인생인데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때 마흔살의 박사과정 언니 아만다는 나에게, '너가 말한대로 우리는 다 우주먼지(Stardust)일 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어.' 콧물을 슥 닦으며 말했다. 우주먼지라서 포기를 하든, 우주먼지라서 재미있게 과정을 보내든. 역시나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2021년 12월.

학교 조사 단계에서 '박사과정 학생 새로 뽑으시나요?' 요지의 이메일을 보냈던 교수님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와서 3곳정도 인터뷰를 봤다. 지원서 넣기도 전인데 이렇게 적극적이라고? 오히려 좋아. 차라리 모든 걸 빨리빨리 끝내버리자는 포부로 열심히 면접을 봤다.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문화의 등장은 참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화면에 띄워놓고 마치 카메라에 집중하는 듯 연기하면서 면접을 볼 수 있으니 문장을 외울 필요도 없고 말이다. 약간 흐릿하고 가슴 위로만 보이는 로퀄리티 비디오 역시 신경써야할 것들을 줄여주었다.  

 

2022년 1월.

지난 달 잠깐 한국에 놀러갔다가 미국에 돌아와서는 기약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새해는 밝았지만 아직 내 2022년은 시작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함께 박사과정에 지원했던 한국인 언니는 매일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대학원 지원은 정해진 날짜없이 학교가 연락을 줄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거라서 손을 모으고 똥줄을 태울 수 밖에 없었다. 1월에 발표나는 곳이 많이 없다고는 하지만, 간절한만큼 긴장이 먼저 찾아왔다. 혼자였으면 차라리 덜 조마조마했을텐데, 옆에서 언니가 한숨을 폭폭 쉬고 악몽까지 꾸니 나까지 덜컥 긴장됐다. 애써 긴장감을 숨기고 활동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계기에서인지 언니들이 헬스에 꽂혀서 나까지 따라서 헬린이가 되었다. 땀 흘려 뛰고 무게를 칠 때 만큼은 동작 갯수 카운트 외에 드는 생각이 없으니 아주 적합한 취미였다. 

놀랍게도 팔운동하는 모습

 

2022년 2월.

글을 쓰는 지금, 2월 16일이다. 지난주에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샌디에고 주립대학, 조지아텍으로부터 합격통보 혹은 합격메일이 곧 갈것이라는 간접통보를 받았다. 아직 4-5곳으로부터 연락을 더 받아야하지만,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된다. 생각보다 뛸 듯이 기쁘진 않았는데, 이건 그냥 내 성격인 것 같다. 뛸듯이 기쁜 일인 건 맞다. 그래도 마음이 편해지니 마치 수능끝난 고3처럼 최선을 다해 놀고 쉬고, 먹고 마시고 지낸다.

함께 준비한 언니는 아직 합격 통보를 받지 못해 내가 더 마음껏 기뻐하지 못한 것도 있다. 아직 마음이 불안할 언니를 앞에 두고 나대기에는 내가 언니를 너무 아낀다.  얼른 같이 합격해서 놀러다니고 싶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얼마나 조바심나고 힘들지.. 언니의 악몽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쨌든 이렇게 또 한번의 입시가 끝나간다. 수능 때에는 대학입시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인생 첫 스텝이었다. 석사 때는 박사 때 이걸 내가 또 겪어야한다니, 끔찍해했지만 2년 뒤에 일어날 일이라며 제쳐두었다. 코로나로 2년이 이렇게 훅 지나갈 줄 모르고 한 생각이다. 박사 지원을 끝내니 이제는 진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또 나의 순진한 착각일수도 있다는 걸 안다는 게 대학입시 때와의 차이?

이걸 끝으로 나는 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이제 진짜 학생보다는 연구자로서 프로그래머로서 혼자, 이번엔 대도시에서, 하고 싶은 일하면서, 돈도 벌고, 여행도 다니면서.. 그러면서 좀 더 어른이 되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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