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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유학일기/유학 일기

유학생활이 힘들 때. 보고싶은 할머니

by 매실이 maesiri 2022. 2. 8.

오늘로부터 약 열흘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주 전 갑자기 호흡이 너무 불편해지셔서 급하게 응급실에 가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로 눈 한번 다시 못 떠보시고 가셨다. 장례식에 오신 어른들은 할머니가 그래도 투병생활 없이 끝까지 집에 계시다가 평안히 가셔서 참 복이 많으시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아 다행인 건 맞는데 편안히 죽어서 복이 많다는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가족들이랑 인사할 시간도 없이 가셨는데 그게 뭐가 좋은 거라고.

 

너무 멀리 사는 나는 장례식도 추모식도 못 갔다. 영상통화로 영정사진 앞에서 절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유학 간다고 했을 때 할머니가 왜 그렇게 멀리 가냐고, 꼭 그렇게 멀리 가야되냐고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 할머니가 보수적이고 세상을 몰라서 그런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가까이 있자, 조금 더 자주 보자는 마음이셨을 것 같다.

 

 

작년 3월 쯤, 미국에서 독립한 지 겨우 2개월정도 되었던 어느날 엄마한테 영상 통화를 걸었는데 웬 병원 병상에 아빠가 환자복을 입고 엄마랑 앉아있던 적이 있다. 분명 문자로 아무말 없었는데 어떻게 된거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눈물이 목젖을 쿡쿡 찔러서 놀란 마음을 숨기기 조금 힘들었다. 이틀 전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아빠가 간밤에 쓰러지셨는데, 하필 창원 출장 중이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이송되는데 앰뷸런스 비용이 52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뇌졸중은 원래 한번 쓰러지면 반영구적인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크고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데, 아빠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면 내가 너무 놀랄까봐 아빠가 제대로 말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나에게 숨긴 거였다.

 

다행히 출장간 곳에서 아빠를 빨리 발견해서 금방 조치를 취해준 덕분에 아빠는 이틀만에 많이 호전되셨고 심장 수술을 하신 뒤 지금은 뇌졸중 이전처럼 건강하시다. 다만 언제든지 가족들이 아플 수 있고, 내가 손쓸 새 없이 떠날 수 있다는 공포가 생겼다. 

어떤 순간들에는 나도 내 결심을 의심하곤 한다. 왜 굳이 이렇게 멀리 떠나와서 공부해야하지? 공부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한국에서 해도 되는데. 그냥 취직했으면 가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잘 살았을텐데 굳이 200만원 넘는 돈 들여 20시간 넘게 이동해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살아야하는거야? 괜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득하기도 했다. 답은 '마음먹기에 달렸음'인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계속해서 자꾸만 마음을 고쳐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는 희생이 따라야한다고 스스로 다독인다. 그리고 많이 심란한 날에는 유학 중에 친해진 언니들을 만난다. 이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장례식에서 절을 한 뒤에 마치 조문 온 것처럼 언니들이 밤 늦게까지 술 한잔 거들어주었다. 한 언니는 그 날이 생일이었는데 나와 함께해주어서 특히 더 미안하고 고마웠다. 결국에 나에게는 '사람'이 참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또 배운다. 그 사람들 안에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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