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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유학일기/유학 일기

[미국박사 유학일기] 박사 수료생이 되다. 박사자격시험 후기

by 매실이 maesiri 2024. 12. 10.

지난 달에 드디어 Qual exam을 끝냈다. 나도 끝까지 다 통과하고 알았는데 우리 과는 Qual 통과를 하면 바로 Ph.D. Candidate, 즉 박사과정 수료생이 된다. 별거 아닌 시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료생이라고 하니까 꽤 큰 milestone을 찍은 느낌이다. 이제 공식 최종학력도 석사 졸이 아니고 '박사 수료'라고 쓸 수 있다. 어디 쓸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중간에 포기하게 되더라도 이 곳에 내가 다녔었다는 기록이 남는 거다. 

 

시험 방식은 과마다 학교마다 천차만별인데, 우리 과의 경우 총 4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번째로는 필수과목 시험 4과목을 봐야하는데, 2년동안 한 학기씩 들은 도시계획, 도시이론과 질적, 양적 방법론 수업들에서 A를 못 받은 경우 시험을 따로 쳐야 한다. 나는 다행히 다 A를 받아서 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다. 수업에서 expectation이 꽤 높고 생각보다 B를 많이 줘서 과제를 공들여서 해야했다. 시험을 통과 못하면 수업을 새로 듣거나 한 학기동안 교수님과 정기적으로 1:1 면담을 해야한다. 

 

두번째로는 나의 Major & Minor 를 직접 정하고 이 분야들에 대한 프로포절 혹은 description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빡센 학교들 중에서는 이 프로포절에서 60-70쪽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는 메이저는 2쪽, 마이너는 1쪽만 작성하면 돼서 금방 작성할 수 있었다. 대신 메이저 관련 논문/책을 100개 정도, 마이너 관련 자료는 50개 정도 찾아서 나만의 Reading List를 첨부해야 해서 이 부분에서 시간이 좀 걸렸다. 퀄 시험이 형식적인 것이라고 하면서도 내 지도교수님은 프로포절을 대충 쓰는 것은 싫어하셔서 버전 3까지 만들고서야 최종 제출을 할 수 있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유연하게 넘어가주실 수 있는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 위로 우르르 졸업해버리고 내가 어쩌다 최고참이 되어버려서 마음 속으로 나를 5-6년차 쯤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다.

 

세번째는 Major, Minor 프로포절에 대한 작문 시험이다. 프로포절과 리딩 리스트를 참고하여 Major Advisor와 Minor Advisor가 각각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 Major 시험은 48시간, Minor 시험은 24시간이 주어진다. 시험 내용이 예상 범위 내였는지,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었는지에 따라 잠이 사치일 수도 있고 마음편히 작성할 수도 있는 시험이다. 사람마다 형식이 다른데 나의 경우에는 두 분 다 에세이 형식의 시험을 내주셨다. 동기 중에는 R을 이용해 통계분석을 하고 결과를 분석해야하는 사람이 있었고, 선배 중에는 한 학기의 실라버스를 디자인해보라는 형식의 특이한 시험을 봤다고 한다. 시험 형식에 대해서는 어드바이저와 사전에 충분히 상의를 해야한다고 들었다. 나의 마이너 지도교수님은 엄청나게 바쁜 컴퓨터 사이언스 과 교수님이셨는데, 너무 바쁜 나머지 8월에 만나자고 했는데 10월 20일까지 풀약속이라며 시간을 아예 내줄 수 없다고 했다 (-.-?) 대신 이메일로 소통하자고 하셨는데 그마저도 절대로 한번에 답을 주시는 법이 없고 일주일정도 답장을 기다리다가 리마인더를 보내야 답이 오는 식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나는 시험에 대한 상의를 거의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내용과 형식이 모두 예상을 빗나가지 않아서 시험날 마음 편히 뒹굴거리면서 천천히 썼다. Major시험 땐 감기에 걸린 데다가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와서 조금 애먹었었는데 Minor시험에서는 시험시간이 절반이었는데도 메이저시험 만큼이나 글을 많이 작성할 수 있었다. Major시험은 분량제한이 있어서 18쪽, Minor시험은 15쪽 정도 작성했다.

 

힘내라고 받은 작은 선물들

 

마지막으로 작문시험 답변에 대한 구술시험을 치러야 한다. 메이저 마이너 지도교수님 2명과 External Examiner라고 한명의 교수님을 더 초대하여 3명의 커미티를 구성하고 이 사람들에게 작문시험 답변에 대한 질문을 받는 형식이었다. 이미 충분히 생각하고 작성한 답변이기에 사실상 구술시험까지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때 뭘 했어야됐는데..' 할만한 게 없다. 그냥 목관리나 잘하면 된다. 나같이 목감기 걸려서 말끝마다 기침하지 않게.. 쿠쿨럭.. 시험 전에 아무것에도 집중에 안되고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스타벅스에서 차 3잔과 답변 프린트를 해서 갔다. 아침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시험을 봤는데 한시간 반을 꽉 채워 집중해서 질문을 듣고 횡설수설하며 나름대로 방어를 하고나니 진이 다 빠졌다. 내가 얘기한 내용 중에 만족스러웠던 답변은 하나도 없다. 샬라샬라 말하면서도 '시바 너 지금 뭐라고 나불거리고 있는거야' 하는 순간도 여러번 있었다. 

 

시험을 다 보고서 지도교수님이 잠깐 나가있으라고 하더니, 잠시 후 다시 문을 열고  'Congratulations! You are a Ph.D. Candidate now!' 라고 하셔서 뭐라고 할지 몰라서 으어어! 하며 동물 소리 같은 걸 냈다. 땡큐 이상의 소감 한마디 정도 준비해갈 걸 그랬다. 아 사실 시험이 추수감사절 방학 전날이어서 Happy Thanksgiving! Thank you for your time! Bye! 같은 말을 했던 것 같기도. 굉장히 어색한 말투로. 저 다음주에 한국 가요 라는 말도 하려고 했는데 그냥 당장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그냥 바이바이했다. 그런 불편한 말은 텍스트로 전달하는 게 쵝오.

 

그 후에 바로 집에 가서 캐리어를 들고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서는 마이애미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냈다는. ^^ 나의 완벽한 플랜대로.

홀가분하게 마이애미행 비행기 타서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잤다. 사실 그 어떤 시험에서도 잠을 덜 자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 들어온 줄 몰랐던 긴장이 싹 풀려 나가면서 잠이 미친듯이 쏟아졌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정말로 퀄 시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형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뭘 준비하기에는 너무 일이 바빠서 딱히 준비도 안했다. 그런데 몸은 감기에 걸리고, 목에 있는 멍울은 계속 부어서 땡기고, 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에 빠진것으로 보아 내 몸뚱아리는 주인 몰래 긴장을 조금 했나보다. 어쨌든 다 끝났으니 됐다. 당분간 조금 덜 열심히 살아도 어쨌든 올해 해야할 큰 일을 다 치렀으니 괜찮다.

구술시험을 봤던 우울한 교실

 

좀 지나고 보니, 박사 학위는 똑똑한 사람이 따는 게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따는 것이라는 말에 너무나도 공감이 된다. 내가 박사수료를 했다고 해서 남들에 비해 지식의 총량이 늘어났다거나 지능이 올라갔다거나.. 그런 일은 없다 (유감이지만). 아직도 여러모로 멍청하고 지나치게 순수한 면이 있다. 오히려 그래서 버티는 거지 내가 정말로 똑똑하고 욕심이 있었다면 이미 때려치고 창업을 하든 취업을 하든 했을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알아가는 것이 재밌고, 욕심이 크지 않고, 이 분야에서 작은 스텝으로 이뤄나가는 것들이 그만두지 않을 만큼의 성취감을 주기 때문에 아직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이런 순진한 태도가 나의 목표를 이루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요가와 명상과 차 한잔을 하고 독서를 두시간 하고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지 않아도 정신을 죽이는 조바심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 여러 차례 벽을 쳐도 또 새로운 것을 배웠다며 일어나서 다른 길을 찾을 힘을 키우는 것. 그게 지금 나에게는 미덕 미더덕 더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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